바둑알과 통
 

동양의 대서화가로 손꼽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바둑알에 관하여 몇 편의 한시를 읊었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듣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 분은 추사 외에 완당, 예당, 시암, 노과 등의 아호로써 불세출의 명필묵화와 시문을 남겼으며 약관에 문과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이조참판, 병조판서를 역임한 출중한 인물이었다.   김정희가 언제인가 동해 바닷가의 차성현 즉 지금의 동래구의 남쪽, 바둑돌이 난다고 하여 지명도 기포(碁浦)라 부르던 해변을 거닐다가 희고 검은 바둑알을 주워 가지고, 그 기묘한 생김새에 감탄하면서 자연기(自然碁)라는 제목으로 지은 명시가 이른바 추사의 기석시(棋石詩)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억겁의 세월 속에 파도와 모래가 밀고 갈아 온갖 모양을 이룬 자연기가 우리 선대들이 두던 바둑알이었는데 요즈음은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됐고, 직경 22mm 정도의 원형제품이 조개, 오석(烏石), 유리, 플라스틱 등을 소재로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바둑알의 소재로서 제일 좋은 것은 백색 알에는 대합(大蛤)조개이고 흑색 알은 오석이다. 더러는 옥돌, 상아, 소뿔등으로도 만든다고 하는데 희귀한 장식품의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실제 대국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일본 규수(九州)의 태평양 연안쪽의 히우가(日向)라는 고장의 바닷가에서 나는 대합조개를 제일로 치는데 색채, 경도, 활도가 빼어나며 특히 유백색의 바탕색깔에 약간의 푸른기가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러나 이런 명산품은 일본의 경우 수요에 비해 원료생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멕시코에서 나는 대합을 많이 수입해서 쓰고 있다. 바둑알의 두께는 보통 6mm 이상이며 조개알 고급품으로 13mm 짜리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8mm 정도가 적당하다. 대중용으로 많이 보급되어 있는 유리알은 장석(長石), 규석(硅石), 초석(硝石), 형석(螢石) 등이 주원료인데 백색 알에는 소다회를 첨가하고, 흑색 알에는 망간을 첨가하여 화학약품과 잘 혼합한 다음에 가열, 냉각, 절단, 성형, 연마 등의 제조공정을 거쳐서 완제품이 나온다.   바둑통은 둥글납작한 모양, 통통한 것, 네모진 모양의 용기가 보통이다. 바둑통의 나무재료 또한 판과 마찬가지로 다양하다. 뽕나무, 느티나무, 검은 감나무, 흑단(黑檀), 떡갈나무, 서양장미나무, 앵두나무, 비자나무를 고급품으로 치는데 시중에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물푸레나무에서부터 최고급이라는 비자통까지 바둑판에 비해 가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 중에서도 일본 동경만 남쪽 태평양상의 한 섬에서 자생하는 뽕나무 바둑통이 최고급품이라고 하며 한국산 뽕나무는 내구성이 좋고 수려할 뿐만 아니라 한약재로서 신경안정, 혈압조절에 좋다는 설이 있어 뽕나무로 바둑통을 만들어 자주 만지게 되면 그만한 효험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만도 하다. 바둑통은 대개 15~17호로 크기가 분류되는데 이는 통의 폭의 크기이다. 즉 15호는 150mm라는 뜻이다. 보통 16호면 아무리 두꺼운 알이라도 담을 수 있는 크기이며 17호는 가장 큰 통으로 좀 더 여유있게 쓰고자 할 때 적당하다. 난통은 뽕나무 특유의 무늬와 더불어 뚜껑에 난이 새겨져 있어 깜찍함을 느낄 수 있고 피크통은 나무 자체가 귀하고 멋이 있어 애기가들에게 인기 있다. 아카시아통은 요 근래부터 생산되고 있으며 그 색이 독특하며 국내에서는 바둑판나라에서만 판매되고 있고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흑단통 역시 귀한 흑단나무로 만들어져 소장가치가 높은 편이다. 비자통은 비자나무 바둑판이 굉장한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라서 소장가치가 가장 높다. 그래서 구입 후 비자통은 고이 보관하고 다른통으로 바둑을 둘만큼 애지중지하는 경우가 많다.